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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적 상황
영화 《1987》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큰 진전을 이룬 해인 1987년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는 군부독재 체제가 정점에 다다른 시기였으며, 동시에 그 권위주의가 무너지는 결정적 전환점이기도 하다. 영화는 단순한 사건 재현을 넘어, 시대 전체의 공기와 사람들의 저항, 그리고 변화의 열망을 강하게 담아낸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대한민국은 전두환 정권의 철권통치를 받으며 정치적 억압 속에 놓여 있었다. 전두환은 1981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유신헌법을 계승한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집권했으며, 언론통제, 정치탄압, 공안정국 등을 통해 시민사회의 비판을 억눌렀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경찰, 보안사 등의 공권력은 정권에 비판적인 인물이나 학생운동, 노동운동가들을 상시 감시하고 탄압했다.
1987년 초, 국민의 분노에 불을 지피는 사건이 발생한다. 1월 14일, 경찰에 연행된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조사를 받던 중 고문으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은 사건을 은폐하려 했고, 처음에는 "책상을 ‘탁’ 치니 박종철이 ‘억’ 하고 죽었다"는 식의 어이없는 발표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언론인과 양심적인 검사, 종교계, 시민사회의 끈질긴 문제 제기를 통해 고문 치사 사건이라는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이미 누적되어 있던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폭발시켰다. 1980년대 중반, 경제성장은 이루어졌지만 정치적 자유는 여전히 억압받고 있었다. 특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은 더욱 조직화되고 있었으며, 가톨릭, 개신교 등 종교계와 지식인들도 점점 민주화 요구에 목소리를 보태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7년 4월, 또 다른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전두환 정권은 차기 대통령으로 노태우를 지명하며 ‘체육관 간접선거’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시민사회의 분노는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전국으로 확산됐고, 노동자, 학생, 종교인, 변호사, 교수 등 각계각층이 ‘6·10 국민대회’라는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게 된다.
결국 6월 10일, 박종철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한 전국적인 시위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벌어졌다. 이 시위를 기점으로 시민들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정부는 더 이상 이를 무력으로만 억누를 수 없게 된다.
6월 항쟁은 수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 속에서 이루어졌고, 이는 전두환 정권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위협하게 된다. 특히 경찰의 최루탄으로 인해 사망한 또 다른 대학생 이한열 열사의 사건은 시민들의 분노를 극한으로 몰고 갔으며, 결국 6월 29일, 당시 여당 대표였던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포함한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이 선언은 형식적으로나마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을 수 있는 헌법 개정으로 이어졌고, 이로써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물론 여전히 군부의 영향력은 지속되었지만, 1987년은 국민의 힘으로 권력을 움직인 최초의 해였고, 이후 민주정부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영화 《1987》은 국가폭력의 실상과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들, 권력에 맞서 싸운 평범한 시민들과 언론인, 검사, 종교인들의 연대와 용기를 집중적으로 그린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실존 인물 혹은 그들을 모델로 한 캐릭터들이며,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한 저항과 선택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2.줄거리
영화 《1987》은 1987년,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의 발단은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던 중 고문 끝에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치안본부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고,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 발표를 내놓는다.
그러나 이를 수상히 여긴 검사 최환(김윤석 분)은 경찰이 원하는 ‘부검 없는 시신 화장’을 거부하고, 시신을 서울대 의대에서 부검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박종철의 죽음이 단순한 돌연사가 아닌 고문치사임이 드러난다. 사건은 점차 언론에 알려지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편, 교도관 출신으로 진실을 알게 된 한병용 기자(이희준 분)는 박종철 고문치사에 연루된 형사들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언론이 탄압받던 시기였지만,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내부자의 증언을 통해 진실을 폭로하려 한다.
이와 동시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시민사회, 대학가 등은 정권의 폭력과 거짓에 맞서 저항을 조직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가톨릭 사제 김정남 신부(설경구 분)와 민주운동가 임홍기, 그리고 대학생 연희(김태리 분) 등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박종철의 친구였던 연희는 처음에는 정치에 무관심했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면서 점차 각성하게 된다. 그녀는 삼촌의 도움을 받아 시위 현장을 찾고, 진실을 알리는 전단지를 배포하며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정권은 점점 더 많은 진실을 덮으려 하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더 이상 잠재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6월 10일, 시민들은 ‘박종철을 살려내라’,‘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다.
시위 도중 이한열 열사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며 민주화 운동은 절정에 이르고, 결국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게 된다.
영화는 권력의 거짓에 맞선 정의로운 선택과, 이름 없는 이들이 만든 역사의 전환점을 조명하며 끝을 맺는다. 《1987》은 한 개인의 죽음이 어떻게 한 시대의 변화를 이끌었는지를 묵직하게 전하며, 민주주의의 본질과 그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3.출연배우
영화 《1987》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연기한 명품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로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다.
하정우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검사 최환 역을 맡았다. 권력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인물로, 영화의 서사를 이끄는 중심축이다. 냉철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김윤석는 사건의 배후에서 모든 것을 조율하는 악역, 대공수사처장 박처장을 연기했다. 권력의 수호자 역할을 맡은 그는 잔인하면서도 철저한 모습으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유해진은 교도관 출신이자 진실을 전하려는 기자 한병용을 따뜻하고 현실적인 연기로 표현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는 모습은 영화의 감동을 더욱 배가시킨다.
김태리는 대학생 연희 역을 맡아, 무관심한 청년에서 점차 각성해가는 인물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젊은 세대가 어떻게 시대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이희준은 정의감 넘치는 기자로서, 치열한 추적을 통해 사건의 핵심 인물들을 밝히는 데 기여한다. 언론의 역할을 상기시키는 인물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다.
설경구는 김정남 신부로 출연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시민 사회의 양심과 도덕적 책임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강동원, 여진구, 박희순 등 다수의 배우들이 특별출연하여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들의 연기는 1987년의 긴박했던 현실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