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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화장르
《잠》(Sleep)은 2023년 개봉한 한국 스릴러 영화로, 장르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심리 공포이자 부부 스릴러다. 기존의 호러나 스릴러 영화가 외부의 위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잠》은 공포의 근원을 집 안, 더 나아가 부부 사이의 믿음과 불신에서 끄집어낸다. 영화는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불안으로 전환되고, 그것이 점차 광기로 치닫는지를 섬세하면서도 압박감 있게 그려낸다.
이 작품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단순한 공포나 자극을 넘어선 정서적 긴장감이다. 잠이라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행위를 소재로 삼아, 관객이 가장 방심하는 순간에 공포를 이끌어낸다. 주인공 현수는 잠들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그의 아내 수진은 점점 그의 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이 영화의 공포는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가'라는 명백한 외부 요인을 추적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의 균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로 인해 《잠》은 단순한 호러가 아니라 심리극에 가까운 장르적 깊이를 가진다.
영화의 배경 대부분은 부부의 신혼집 안에서 벌어진다. 좁은 공간, 제한된 인물 수, 일상적인 대화들이 이어지지만, 그 안에서 고조되는 긴장감은 매우 밀도 높다. 이러한 밀실 구조는 부부의 심리적 단절을 상징하기도 하며, 장르적 공포를 일상과 결합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영화는 특별한 효과나 괴물, 유령 없이도 관객을 긴장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는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공포이며, 현실성과 결합된 심리적 압박감은 이 영화를 단순한 장르영화를 넘는 수작으로 만든다.
영화의 주연 배우 정유미와 이선균 또한 이 장르의 정서를 잘 표현해냈다. 정유미는 점차 불안을 넘어 광기로 치닫는 수진의 내면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했고, 이선균은 잠들었을 때와 깨어있을 때의 상반된 인물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특히 이들의 연기 호흡은 이 영화가 단순한 호러가 아니라, 신뢰와 의심의 균열을 다룬 부부 심리극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잠》은 장르적으로는 심리 스릴러, 호러, 드라마의 요소를 결합한 복합 장르 영화다. 그러나 그것이 전달하는 공포는 단지 외부적 위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유재선 감독은 데뷔작에서부터 장르의 공식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하며, 한국 스릴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잠》은 단순한 장르 소비를 넘어서, 현대 사회에서 점점 커져가는 개인의 불안과 고립을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2.영화감독
감독 유재선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불면에 시달리던 시기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이 작품은 단순히 상업적 공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불안과 심리를 깊이 있게 탐색한 결과물인 셈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불안함”을 영화로 형상화하고자 했으며,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심리적 공포로 확장된다.
또한 《잠》은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되며 국제적으로도 그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이는 한국 스릴러 영화가 단순한 장르 소비를 넘어서, 예술성과 정서적 깊이를 겸비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다. 유재선 감독의 연출력은 미니멀하면서도 세밀하며, 시나리오부터 완성된 비주얼까지 모든 면에서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연출은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유재선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한국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전통적인 스릴러 문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는 장르적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배합하면서도, 그 중심에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놓는다. 《잠》은 단순한 서사 구조가 아닌, 리듬감 있는 편집과 조용하면서도 무거운 음악, 극도로 절제된 연기 연출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한다.
3.줄거리
영화 《잠》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평범하고 단란한 신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어느 날부터 현수(이선균 분)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로 잠든 동안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잠꼬대처럼 보였지만, 점점 그의 행동은 위협적이고 위험한 수준으로 변한다. “누가 집에 있어”, “누군가를 해쳐야 해” 같은 말을 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주방에서 칼을 들고 서 있기도 한다. 이런 변화에 현수 자신도 당황하고, 아내 수진(정유미 분)은 처음엔 걱정으로 받아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잠든 모습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간다.
수진은 남편을 사랑하기에 처음엔 병원을 찾고, 약을 먹이는 등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명확한 진단은 내리지 못하고, 현수의 상태는 점점 더 불가해한 수준으로 치닫는다. 잠든 그가 무의식 중에 위험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진은 밤마다 남편을 지켜보며 잠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현수가 깨어 있을 때는 평범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점이 수진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녀는 이 상황이 단순한 질병인지, 아니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에 사로잡힌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특히 현수가 잠든 후 기억하지 못하는 위험한 행동이 반복되자, 수진은 남편과 자신 모두의 안전을 걱정하게 되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진의 내면에서는 갈등이 깊어진다. ‘이 사람이 정말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이 사람을 내가 버릴 수는 없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믿음과 불안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녀는 점점 잠 자체가 공포가 되는 지경에 이르고, 결국에는 현수에게 강제로 약을 먹이고, 다른 공간에 격리시키려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하게 된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수진의 심리상태는 더욱 불안정해지고, 관객은 그녀의 시선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현수가 실제로 위험한 존재인지, 혹은 수진의 불안과 망상이 만들어낸 공포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긴장 상태가 이어진다. 결국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두 사람의 관계가 공포로 변해가는 과정을 끝까지 밀도 있게 따라간다.
《잠》은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닌, 심리적 스릴러로서, 주인공 수진이 겪는 내면의 흔들림과 고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가 어떻게 점점 일상과 이성을 잃어가는지를 따라가며, 영화는 공포가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결국 수진의 선택과 감정은 관객에게 극한의 공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전달하며 영화는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